월간 SPO – 내 악기를 말하다

From the Blog

10

월간 SPO – 내 악기를 말하다

수십 명의 단원이 각기 다른 악기로 화음을 쌓아내면서 그 자체로 ‘가장 완벽한 하나의 악기’가 된 오케스트라. 그 이면에는 단원 개개인의 땀과 고충도 녹아있다. 오케스트라를 빛내는 서울시향 단원들 각각의 보물1호, ‘내 악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달에는 플루트 수석 박지은 씨가 플루트의 매력과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부수석 박지나 씨와 송연화, 장선화 단원은 플루트의 ‘작고 높은 자매’ 피콜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플루티스트
5_
박지은

6
박지나

7
송연화

8
장선아

1사람의 영혼을 표현하는 악기, 플루트
9

박지은 씨가 플루트를 처음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다. 교내 리코더 콩쿠르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을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선 3학년이 되면 악기를 무조건 하나씩 해야 됐어요. 제가 ‘우량아’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초등학교 2학년 때 학생들이 리코더를 다 배웠었는데 제가 교내 리코더 콩쿠르에서 1등을 했어요. 그때 담임선생님이 3학년 되면 플루트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열 살의 나이에 시작한 플루트는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는 초석이 됐다. 그 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겉보기는 화려하지만 교향악 활동을 하면서 힘든 점도 많다고 했다. 연주할 때 플루티스트를 난처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연주할 때였어요. 4악장이 시작되고 중요한 플루트 솔로가 막 들어가기 전, 악기의 키에서 코르크가 뚝! 떨어져 버렸죠.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다행히 악기를 달래 연주는 무사히 끝냈죠. 아마도 홀의 급격한 온도변화로 인해서 일어났던 일인 듯해요.”

그는 “다른 악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플루트는 금속으로 된 악기이다 보니 겨울엔 1~2분만 안 불어도 얼음같이 악기가 차가워지고, 여름에는 습도와 땀 때문에 손과 악기에 대는 입 밑 부분에서 악기가 미끄러져 고역을 치를 때가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하지만 힘들다는 호소도 잠시, 행복한 연주를 할 때면 힘들었던 모든 것들을 한 순간 날려버릴 수 있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흥이 나는 곡을 연주하다보면 어느새 시름을 잊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특히 라벨과 브람스의 곡을 연주할 때 가장 즐겁다고.

“너무나 많은 좋은 곡들이 있지만, 제가 한국인이라서일까요? ‘흥’이나 ‘한’이 진하게 느껴지는 곡들이 좋아요. 라벨의 ‘라발스’나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등은 정말 오케스트라 전체가 흥이 나서 즐겁게 연주할 수 있죠. 또 차이콥스키 교향곡 ‘비창’의 마지막 악장이나 말러 교향곡들의 느린 악장들. 플루트 솔로가 나오는 작품으로는 말러 10번이 가장 인상깊었구요,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의 플루트 솔로 부분 등 무언가 ‘한’이 느껴지거나 슬픈 멜로디의 솔로 연주를 좋아한답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곡들도 너무 좋구요.”

플루티스트들의 고충에 이어 플루트 악기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플루트에는 은과 금, 나무 등 여러 가지 재료가 쓰이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고 한다. “은으로 된 악기는 반짝반짝 음색이 밝은 편이고, 가벼운 표현이 요구될 때 표현하기 좋아요. 반면 금 악기는 중후한 맛이 있고, 은 악기에 비해선 어두운 음색을 갖고 있답니다. 나무 악기는 은이나 금 악기보다 따뜻함을 갖고 있는 듯하구요.”

박 씨는 현재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악기도 소개했다. 야마하(Yamaha)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그는 야마하에서 특별 제작한 모델을 사용한다. 개인 모델 넘버가 따로 있는 악기로 지난 2006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악기를 보물처럼 애지중지하지만 악기마다 나름의 한계를 느끼기 마련이다. 박 씨도 플루트란 악기가 가진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플루트는 많은 작품에서 (화려하거나 경묘한) ‘새’를 표현하게 될 때가 많죠. 그런데 브람스 작품같이 소리에 깊이가 요구되는 곡에서는 악기 음색의 특성상 표현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이유 때문에 브람스가 플루트를 위한 곡을 쓰지 않은 것 아닐까요?”

한편 그는 그럼에도 저항할 수 없는 플루트의 매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에서 사용되는 관악기 중 마우스피스나 리드를 사용하지 않고 부는 악기는 플루트와 피콜로뿐이에요. 그야말로 호흡이 바로 닿는 악기죠. 그래서인지 플루트는 사람의 영혼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악기인 것 같아요! (웃음)”

그에게 곤란할 법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플루티스트 말고 다른 파트로 교향악 활동을 했다면 어떤 악기를 선택했을 것 같은지. “첼로를 배워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소리가 높은 플루트를 불고 있어서일까요. 플루트와 상반되는 저음영역대의 악기인 첼로가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마지막으로 플루트와 관련된 재미있는 농담이 있는지 물었다. “특별한 건 없구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플루트란 악기가 보기에 예뻐서인지, 플루트 하는 사람들은 공주병이 많다고들 하네요(웃음). 서울시향 플루트 섹션에는 그런 사람 없답니다!”

10

2“삐익삐익….” 고음역 까다로운 피콜로

11

플루트에 이어 모양새와 연주법은 비슷하지만 길이가 짧고 한 옥타브 높은 소리를 내는 피콜로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플루트 부수석 박지나 씨와 송연화, 장선아 단원이 피콜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먼저 오케스트라 곡 중 피콜로 연주자를 질리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지 물었다. 박지나 씨는 “질린다기 보다는, 까다로워서 다른 작품들 보다 더 연습이 필요한 작품이 많아요.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중간음이 크게 공명되도록 소리내야하는 라벨의 어미거위, 고음을 작게 소리내야하는 말러 교향곡 9번등을 들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선아 단원도 피콜로의 음형 한계에 동의했다. “피콜로는 고음연주가 어려울 것 같지만 저음을 연주하는(특히 큰소리로 연주) 부분에서도 어려움이 있어요. 라벨 ‘피아노 콘체르토’가 그런 예에요. 중음과 고음을 오가며 빠른 템포로 연주하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3악장’도 연주자들이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곡 중 하나죠. 다른 악기와 음정을 맞추며 느리게 진행하는 곡이나 악장의 처음과 끝을 연주하는 말러 ‘심포니 1번’, 드뷔시 ‘라 메르’,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곡이 그 예입니다.”

플루트와 마찬가지로 연주할 때 피콜로 연주자들도 난처해지는 순간이 있을 듯하다. 박 씨는 “피콜로는 음역이 오케스트라 전체에서 제일 높아요.

그런 만큼 음색 또한 튀기 때문에 고음에서 작은 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운데, 지휘자가 더욱더 작은 소리를 원할 경우 한계가 느껴지기도 합니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와 함께 송연화 단원은 저음역 뿐만 아니라 고음역의 특성 때문에 겪는 고충도 털어놨다. “피콜로는 워낙에 고음역이기 때문에 음색자체가 매우 도드라지게 들려서 모두들 음정이 매우 높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앙상블을 하다보면 음정이 높으니 낮춰 달라고 요구할 때 저는 음정을 오히려 높여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힘들 때가 있더라구요.”

피콜로 연주자로서 어떤 작품의 어떤 부분을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한 지 묻자 박 씨는 푸치니와 베르디의 오페라를 꼽았다.

“푸치니나 베르디는 오케스트라 피콜로 부분에 여러 가지 교묘한 효과를 집어넣었고 재미있는 부분도 많아요. 이들의 오페라에서 피콜로는 장면이나 배경 묘사에 효과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듣는 청중들만큼이나 연주자도 흥미를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글 손희정 기자제공 서울시립교향악단
발행 2013년 8월호

Have your 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