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기술자가 아닌 아티스트로…머리보다 마음 울리는 연주자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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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기술자가 아닌 아티스트로…머리보다 마음 울리는 연주자 될 것

박지은 서울시향 수석 플루티스트

41대 1 뚫고 서울시향 수석 주자
오디션서 두 마디쯤 연주하자 정명훈 감독 놀라더니 파격적 주문

존재감 남다른 ‘멘토 정명훈’
‘너 이렇게해’ 아닌 무언의 가르침, 유학 10년보다 시향서 더 성숙해져

진정한 플루티스트를 향해
예술 기술자가 아닌 아티스트로…머리보다 마음 울리는 연주자 될 것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아름답고 청신한 음색을 지닌 플루트는 최고 음역의 관악기다. 입김으로 관 속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기명악기(氣鳴樂器).저음은 무겁고 중음은 부드러우며 고음은 화려하다.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음은 무엇일까.

“가장 높거나 가장 낮은 음이 제일 힘들죠.그중에서도 최저 음역이 더 어려워요. 2005년 서울시향에 입단한 뒤 정명훈 선생님께 가장 먼저 배운 게 그거예요. 작아도 아주 작게,제가 불면서도 이게 들릴까 싶을 정도로 극최저음을 내는 거죠.뭐라고 꼬집어 말하진 않지만 ‘너의 포지션은 그걸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무언의 지침을 주는 분위기예요. 그 전에는 ‘더 작게 불어봐’라고 압력을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무튼 그런 테크닉까지 깨우쳐야 하니까 혼자 더 연구하고 좋은 연주자나 외국 오케스트라를 만나면 배우게 되죠.유학 기간 10년보다 서울시향에 들어와서 훨씬 더 많이 성숙한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

박지은 서울시향 수석 플루티스트(31).그는 “입단해서 2~3년 동안 극최저음 하나만 들이팠다”며 “대충이 아니라 최대한까지,아무도 못따라올 정도의 기량을 갖출 수 있을 때까지 집중했다”고 말했다.

“거울 앞에서 몇 시간씩 서 있거나 외국까지 찾아가고 별짓 다 했어요. 지금은 그런대로 저만의 이론이 생겼죠.훌륭한 연주자들이 ‘입술 이렇게 해.호흡 이렇게 해’라고 가르치면 무조건 그렇게 바꿔야 할 것 같고 그랬는데 이제는 제 주관이 생겨서 그건 그 사람 음악이고 내 방법은 따로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됐죠.”

6년 전 4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시향 수석 플루티스트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던 그는 어느새 원숙한 기량뿐만 아니라 가장 바쁜 연주자로 국내외를 누비고 있다. 올해만 해도 3월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서 플루트의 비중이 큰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동시에 연주했고 4월 교향악 축제와 국립오페라단 ‘시몬 보카네그라’,현대음악 프로그램 ‘아르스노바’에 이어 지난달에는 도쿄와 상하이 공연까지 다녀왔다. 오는 17일에는 호암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그는 예원학교 재학 중 미국으로 가 줄리아드 예비학교와 맨해튼음대,예일대 음악대학원을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탁월한 음악성과 파워풀한 연주력에 우아함을 겸비한 플루티스트’로 불리지만 성격은 소탈하다. 173㎝의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표정.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커다란 벽’ 같아서 별로 당기진 않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리코더를 했어요. 교내 콩쿠르에서 상도 받곤 했죠.그때 담임선생님이 플루트 담당이었는데 제가 체격이 좋으니까 호흡도 좋을 거라며 플루트를 권하더군요. 연습할 땐 엄마 몰래 문을 잠그고 TV도 보고 만화도 보고 누워서도 했습니다. 피아노는 한 자세로 계속해야 하지만 플루트는 안 그렇잖아요. 지루해지면 눈이 다른 데로 가죠.엄마가 갑자기 부르면 화들짝 놀라서 이상한 고음을 내면서 발가락으로 TV도 끄고….혼자 필 받으면 이웃집은 생각지도 않고 베란다에 나가 불고 화장실에서도 연습했죠.”

플루트는 폐활량이 좋아야 유리할 것 같은데 그는 호흡을 위해 따로 훈련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어릴 때 우량아였잖아요. 살을 빼야 한다고 수영장에 다녔죠.선수급으로 훈련했어요. 그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그의 왼손 검지 첫마디 부분에 굳은살이 도드라져 보였다. 연습할 때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피부 따라 모두 다르다”며 겸연쩍어 했지만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증표다. 서울시향 수석 플루티스트 발탁 전까지는 공부를 더 하러 유럽으로 갈 계획에 부풀어 있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돌아와 2003년부터 충남교향악단에 있었는데 유럽으로 가려고 준비를 다 마쳤죠.그런데 서울시향 오디션 공지가 뜬 거예요. 25년 만에 난 포지션이었어요. 동료들은 레슨도 받고 하는데 전 아직 어려서 봐주는 분도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준비했어요. 한 명 뽑는데 41명이 왔더군요. 젓가락으로 순서를 뽑았더니 11번이었어요. 10번 응시자까지 오디션을 보고 나오는 데 5분 정도씩 걸리더라고요. 들어갔더니 심사위원들끼리 이야기하고 있고,정명훈 선생님은 처음 봤어요. 튜닝하고 콘체르토를 시작했죠.아직도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아요. 정 선생님이 뭘 쓰고 계시다가 두 마디쯤 연주하니까 고개를 딱 들고 시선을 꽂더니 몸을 뒤로 기대더군요. 카덴자 2악장 나머지 준비한 곡을 다 불었죠.빨리 불어라 늦게 불어라 작게 크게 등등 온갖 주문을 다 하셨어요. 그렇게 15분 이상을 했죠.1주일 뒤 자정에 서울시향 홈페이지에 발표가 났는데 다른 분야에 ‘합격자 없음’이 줄줄이 보이다 드디어 플루트 수석에 제 이름이 있는 거예요. 주무시는 부모님 다 깨워서 너무 좋아했지만 그때부터 걱정이 됐죠.이걸 잘 해낼 수 있을까. 25세밖에 안 됐으까 건방지다는 소리 들을까봐 조심하고 6개월 동안 제 자신을 지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교만해도 안 되고 비굴해도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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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살이 박힌 박지은 씨의 왼손 검지 첫 마디.

그 과정에서 그는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무언의 회초리’ 같은 정명훈 감독의 가르침에 감명받았다고 했다. “존재감부터 달라요. ‘너 이렇게 해’라는 말씀을 절대로 안 하시고 담백하게 표현하는데 그걸 포착하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죠.어떤 사람은 알고 어떤 사람은 모르고 넘어가요. 훌륭하고 뛰어난 지휘자가 많지만 정명훈 선생님의 음악은 깊고 따뜻하고 한국 사람만의 정서까지 잘 담아내요. 다른 유명한 사람들도 흉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

그도 이제 박지은만이 아니라 한국적인 음악의 역량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한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연주자들이 그들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듯이 우리만의 독창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플루트는 언어와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성악가처럼 가수는 아니지만 얼굴 근육을 다 쓰거든요. 연주할 때 바로 대서 불기 때문에 호흡이 사람하고 가장 닮았죠.떨리면 바로 알아요. 발성할 때 쓰는 모든 기관을 다 쓰잖아요. 어떤 서양 선생님은 ‘왜 한국 학생들은 대금 비브라토를 쓰니’라고 한 적이 있어요. 국악적 비브라토가 서양음악을 표현할 때는 좋지 않을 수 있죠.그러나 그 경지를 넘고 나면 독창적인 영역이 나올 거예요. ”

한양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그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악보도 잘 외우고 테크닉도 뛰어난데 창의력이 부족해 손해를 많이 본다”고 지적했다.

“저도 대학원 다닐 때 쟤네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싶은 학생들이 많았는데 다들 자기 색깔이 뚜렷했어요. 예술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가 되려면 진정한 아티스트가 돼야죠.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남는 연주를 해야 해요. 인간적이고 따뜻한 소리로 자기 색깔을 확실히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

그는 플루트를 ‘사람의 영혼과 가장 가까운 악기’라고 표현한다. 호흡으로 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들숨과 날숨은 곧 육체의 생명력과 영혼의 숨결을 연결하는 통로다. “전 영혼과 관련한 걸 좋아해요. 작년 독주회 부제가 ‘소울 스피치’였고 그 전에는 ‘컬러 오브 소울’이었어요. 이번에도 ‘소울’로 시작하려 했다가 ‘박지은 독주회’로만 했지만 앞으로 ‘소울 시리즈’를 하고 싶어요. ”

만난사람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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